[뉴스토피아 = 편집국 ] 영화 ‘사도’가 올해 한국영화 흥행 톱3에 올랐다. 지난 23일을 기점으로 누적 관객 수 621만 명을 넘어서며 '베테랑'과 '암살'에 이어 2015년 한국영화 중 세 번째로 많은 관객 수를 동원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뒤주에 갇혀 운명을 달리한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영조는 아들을 사랑했다. 영조는 어머니의 신분이 미천하고 형인 경종의 독살설에 연루되는 등 근본적인 취약점을 가진 왕이었기에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때문에 아들만큼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흠집 없는 군주로 만들고 싶었다.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화를 부르는 법. 아들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끝없는 요구와 기대에 급기야 와르르 무너진다. 결국 영조는 사도세자를 ‘광인(狂人)’으로 몰아 뒤주에 가둬 죽인다.
과연 사도세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뿌리깊이 박힌 당쟁, 즉 노론과 소론 사이에서 너무나 일찍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빨리 죽진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협상학 관점에서 바라보면 영조는 자신의 기대에 찬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정조)이라는 ‘배트나’가 있었다.
배트나(BATNA :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란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 또는 마지노선을 말한다. 영조가 손에 쥐고 있는 것. 바로 사도세자의 아들이 배트나다. 만약 영조의 정통을 이을 사도제자의 아들조차 없었다면 사도세자를 그렇게 허망하게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배트나를 알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15세기 영국의 왕 에드워드 4세가 프랑스의 영토를 빼앗기 위해 원정군을 이끌고 해협을 건너 쳐들어왔다. 전력이 열세였던 루이 11세는 협상을 결심했다. 전쟁의 비용이 엄청나게 소요되는 지루한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 자신의 배트나임을 잘 알고 있었던 루이 11세는 에드워드와의 협상을 성사시키는 것이 더 안전하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이는 해결책이라고 판단했다. 마침내 그는 1475년 영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조약 체결과 동시에 7만 크라운을 지불하고, 에드워드의 남은 생애 동안 매년 5만 크라운을 지급했다. 루이 11세는 그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48시간 내내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도록 연회를 베풀 정도로 영국 왕과 원정군을 극진히 대접했다. 게다가 그는 철군 길의 에드워드가 적적하지 않게 부르봉 추기경을 동행시켰고, 추기경에게 에드워드가 죄를 범할 때마다 대신 용서를 구하는 임무까지 부여했다.
에드워드와 그의 군대가 백년전쟁을 마감하며 배를 타고 물러가자, 루이 11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부왕께서 하셨던 것보다 훨씬 쉽게 영국군을 프랑스 밖으로 몰아냈다. 그는 무력의 힘을 사용하셨지만, 나는 고기 파이와 와인으로 그들을 물리친 것이다.”
자신의 배트나는 물론 상대방의 배트나를 알고 임할 때, 협상의 힘은 이처럼 대단한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외교정책을 미국이나 중국 등 한 나라에 올인하지 않고,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만약 사도세자가 루이 11세가 그랬듯, 자신의 열악한 배트나를 알고 상대인 영조의 입장에서 협상에 임했다면 오늘날 비극의 인물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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