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피아 = 편집국 ] 며칠 전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집 앞 가게에 들렀다가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어릴 적 먹었던 부라보콘이 옛날 모습 그대로 냉장고 안에 있던 것이다. 서럽게 울다가도 엄마가 아이스크림 하나 사준다면 울음을 뚝 그치고 말았던 부라보콘은 비교 불가능한 꿀맛으로 기억된다. 입안에 넣으면 스르륵 녹아버리는 부드럽고 달콤한 세상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느낌이랄까.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둘이서 만납시다, 부라보콘. 살짝쿵 데이트~” 지금도 기억나는 CM송을 흥얼거리며 얼른 아이스크림을 집어들었다.
최근 들어 우리 주변에 추억의 맛을 내세운 먹거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CJ 푸드빌의 뚜레쥬르는 복고풍 도넛 제품인 ‘그때 그 도나쓰’를 출시했다. 옥수수 가루로 반죽한 작은 도넛 5개를 종이봉투에 담고 가격도 1000원으로 저렴하게 책정했다. 고객들이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재래시장에서 도넛을 사먹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넛을 튀길 때 사용하는 검정 솥을 매장에 비치하고 그 안에 설탕을 담아 고객들이 원하는 만큼 묻혀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단종된 제품을 부활시키거나 상품 겉면 디자인을 바꿔 추억을 되살린 식품도 많다. 롯데푸드는 60년대 출시돼 큰 인기를 끌었던 삼강하드를 52년만에 재 출시했다. 삼강하드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여름철 어린이들이 즐겨 먹던 빙과류는 색소와 설탕 또는 사카린을 섞은 물에 막대기를 꽂아 얼린 아이스께끼였다. 자칫 배탈이 났던 불량식품이었다. 62년 식품위생법이 시행되면서 아이스께끼는 설 자리를 잃었고 삼강하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번에 다시 출시된 삼강하드는 패키지도 전체적으로 복고풍의 폰트와 디자인으로 구성해, 포장지만으로도 옛날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해태제과의 부라보콘 역시, 출시 45주년을 기념해 1970년 당시 포장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부라보콘 스페셜 에디션 120만개를 출시해 출시 한달만에 완판시키는 힘을 과시했다. 옛날 번데기, 옛날 건빵, 옛날 요구르트 등 상품 패키지에 옛날이란 글자가 들어간 제품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최대 45% 늘어났다. 편의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 중 하나도 소시지와 계란프라이를 얹은 추억의 도시락이다. 식품·외식업계의 복고 메뉴들은 추억 속 감성을 자극해 그 시절 그 맛을 다시 즐기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구매로 이어지고 있는 추세다.
뭐니 뭐니 해도 복고 붐은 패션에서 두드러진다. 촌스럽게만 여겨졌던 청청패션, 통 넓은 바지가 다시 거리로 나오는가 하면, 과거 유행했던 패션 브랜드, 운동화 제품들도 최근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떡볶이 코트, 멜빵바지, 베레모 등 추억의 패션 아이템도 재조명되고 있다. 한 인터넷 쇼핑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복고풍 아이템의 판매 증가율은 전년 대비 아이템별로 최대 200%이상 늘었다.
이런 틈새를 기업들이 놓칠 리 없다. 항상 소비자의 구매 패턴에 촉을 세우고 있어야 하는 마케터에게도, 시대를 앞서 최첨단을 주무기로 혁신의 이미지를 부각시켜왔던 기업에게도 복고 트렌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추억만큼 변함없고 안정적인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들과 과거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타겟팅한 레트로 마케팅이 각광받고 있다.
과거를 회고한다는 뜻을 지닌 ‘Retrospective’의 약어인 ‘레트로’는 과거 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레트로 마케팅은 현재를 팔기 위해 과거를 활용하는 기법으로, 소비자의 기억에 남아있는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때문에 한 시절 유행했던 브랜드를 재출시하거나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약간의 새로움을 더해 출시하는 특징이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레트로 마케팅은 신제품 출시에 드는 막대한 판촉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보통 어느 한 브랜드의 인지도나 선호도를 높이려면 수십억원이 넘는 광고, 마케팅 비용이 들지만, 소비자가 이미 알고있는 과거의 추억이나 향수를 브랜드에 접목하면 적은 비용으로 과거의 명성에 묻어갈 수 있다. 외환위기 때 레트로 마케팅이 활발했던 건 이 때문이다.
또한 제품을 기억하는 기성세대에게는 향수를, 새로운 젊은 소비자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해 한 가지 제품으로 다양한 소비자 계층을 공략할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이가 들고 언젠가는 소비의 주역이 된다는 점에서도 복고는 기업들에게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레트로 마케팅에도 함정은 있다. 청년층과 중장년층에게 모두 어필할 수 있는 이중 타킷팅이 가능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유리한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마케터의 입장에서는 갈팡질팡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제품이나 콘텐츠의 속성은 이중 타킷을 향하더라도, 실제 제한된 세일즈 환경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디테일은 분산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도 좋아하고 아이도 좋아하는’과 같은 메시지는 두 타킷 모두에게 외면 받기 십상이다.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는 접근과 정교화가 필요하다.
또한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억만 남아있을 뿐 불편했던 부분들은 기억에서 상당수 사라진다. 따라서 자칫 이런 불편한 부분까지 복원해 버리면 이는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외면하는 마케팅이 되어 버릴 수 있다.
복고라는 트렌드를 활용하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과거보다 현재이다. 과거는 축적된 아이템이며 누구나 언제라도 가져올 수 있다. 문제는 현재가 진행형이란 점이다. 움직이는 타깃을 제대로 겨냥하기 위해서는 눈동자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는 작업이 구태의연해지지 않으려면 익숙한 과거를 현재의 시선으로 되살려내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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