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유신’ 카드 꺼내든 ‘진덕여왕’
[칼럼] ‘김유신’ 카드 꺼내든 ‘진덕여왕’
  • 편집국
  • 승인 2016.03.0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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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정대윤 편집국장
[뉴스토피아 = 편집국] 중국의 고대자료 속에 기록된 신라 여인들의 삶의 모습은 상반됐다. 남성에게 순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과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적극적인 여인들로 나뉜다. 또한,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재위한 시기의 신라는 ‘삼국통일 근간이 됐던 시기’라고까지 평가된다.

신라 두 번째 여왕인 진덕여왕(眞德女王, 재위 647~654)은 서라벌 출신 진골 정통들이 반발로 즉위 초부터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선덕여왕의 후사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 이어야 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들은 우두머리인 ‘비담’을 중심으로 군사반란을 일으키며 ‘여자라 정사를 잘하지 못한다’며 여자임금에 반발했다.

불리한 상황이었던 진덕여왕이 그들과 공방을 이어가던 중 한밤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진 일이 있었다. 그들은 이를 두고 “여주(진덕여왕)가 패전할 조짐이다”라며 여론을 몰아갔다.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라’ 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남성상위시대에 여자임금이었으니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진덕여왕은 ‘김유신’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서라벌 주류사회에서 가야계라는 이유로 천대를 받았던 김유신을 영입한 진덕여왕은 여성이란 이유로 인정받지 못한 자신과 김유신을 같은 처지라 여겼던 것이다.

좋든 싫든 신라 지배계급의 주류는 될 수 없었던 김유신은 진덕여왕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허수아비에 불을 붙인 뒤 연에 실어 하늘로 올려 보내고는 “어젯밤에 떨어졌던 별이 다시 올라갔다”는 소문을 내 민심을 가라앉히고 제사까지 지냈다고 한다.

진덕여왕과 김유신은 ‘차별받는 서러움’으로 뭉쳤다. 김유신은 어짜피 진덕여왕이 아니어도 그들과 맞서야 했으며, 진덕여왕 역시 김유신을 영입하지 않았다하더라도 그들과 맞서야 하는 입장이었다. 김유신은 결국 승리했고 신라 사회의 새로운 주류로 급부상했다.

<삼국사기> 기록에 진덕여왕은 ‘자질이 풍려하고 키가 일곱 자나 되며 손을 늘어뜨리면 무릎 아래까지 닿았다’며 여장부로 묘사했다. 그녀는 김유신과 김춘추 등 능력있는 소외세력을 영입해 자리를 지키고 신라를 발전시켰다.

김유신처럼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면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물론 진덕여왕에 대한 믿음도 있었겠지만 둘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왕과 신하’의 사이였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들이 만약에 지위가 같았다면 누군가 배신을 하지 않았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권력싸움으로 발전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뉴스토피아 = 편집국 / ntpress@newstop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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