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피아 = 정인호 칼럼니스트] 아침 7시 기상. 영어책 2권을 읽고 오늘 학교 준비물을 분주하게 준비한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9시까지 등교한다. 수업이 끝나고 영어학원, 피아노, 논술, 게다가 태권도나 리듬체조를 마치고 6시에 집에 온다. 저녁을 먹고 한자 선생님이 집으로 오셔서 과외를 받는다. 마지막 학교 숙제까지 마치면 밤 11시가 넘는다.
위 스케줄에 해당되는 학생은 중학생이 아닌 초등학교 3학년의 한 여학생의 일정표다. 얼마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세계 아동이 학업 스트레스에 받는 비율을 공개했다. 분석결과, 우리나라 아동 두 명 중 한 명(50.5%)이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대답했다. 비교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반면 "학교 생활에 만족한다"고 대답한 학생은 18.5%만이 응답했으며, 이는 거의 최하위 수준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병정개미가 그 뒤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병정개미는 페로몬을 방출해 먼저 간 개미의 뒤를 열심히 쫓아가고 그 뒤를 또다른 개미들이 따르면서 개미들의 행진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러한 행진은 방향이 없다. 그저 앞선 개미의 뒤를 쫓기 때문에 결국 거대한 원을 이뤄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 뿐이다. 의도나 의지가 아닌 맹목적인 행진이다.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같은 자리를 돌던 개미 떼는 결국 피로와 굶주림으로 지쳐 모두 죽게 된다.
2013년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인은 연평균 2,163시간을 일해서 36개국 가운데 2위를 차지했다. 가장 적게 일하는 네덜란드의 1,380시간에 비해 거의 1.6배에 달하는 노동시간이다. 반면 생산성은 어떨까?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36개국 중 32위로 거의 최하위권이다. 쉼없이, 여유 없이 매 순간에 최선을 다했는데 성과또한 높아야 정상이 아닌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 중 한명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발표한 상대성이론은 20세기에 발표된 가장 유명한 이론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견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병정개미처럼, 밤낮으로 일하는 우리나라의 직장인들처럼, 밤잠을 설쳐가며 일하는 수험생처럼 연구해서 탄생되었을까? 물론 주변 연구자들과 빛에 대해서 온종일 토론하고 자문하는 과정은 거쳤다.
그러나 그가 답을 찾은 원인은 스스로에게 '여백(white space)'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알프스에서 하이킹을 즐기며 상상에 잠겼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그가 잠자는 동안 떠올랐다. 그리고 일반 상대성 이론은 특허사무소에서 상체를 뒤로 젖힌 채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떠올랐다.
모두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에 밤을 새워가며 집중해서 얻어낸 성과가 아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천문학자, 과학자, 군사 전략가, 화가였던 것도, 오늘날 스티브잡스가 새로운 서체를 개발한 것도,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로스앤젤레스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과 시애틀의 익스피어리언스 뮤직 프로젝트를 독특하게 디자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학교에는 색다른 교육환경이 있다. 일본 학교들은 학생들에게는 자유 시간을 더 많이 준다. 수업일수가 많은 것은 우리나와 비슷하지만, 일본학교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의 25퍼센트가 자유 시간이다. 여백이 학업의 성취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나라와 같은 교육환경에 아인슈타인이 대학원까지 진학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안정적인 직장과 높은 연봉을 찾기 위해 행동하지 않았을까...
당신 자신이, 당신의 자녀가 창의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이제 '여백'의 옷을 입어보라.
[뉴스토피아 = 정인호 칼럼니스트 / nwtopia@newstopia.co.kr]